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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위한 의료: LGBTQ+센터에서의 배움과 성찰

2024-11-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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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된 의정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이지만, 감사하게도 인연이 닿아 2주 동안 LGBTQ+센터의 진료와 수술을 참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당사자로서, 성소수자로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찾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장벽이 있는지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번 참관을 통해, 그러한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한 센터에서 감당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료실, 대기실의 환경에서부터 고심한 흔적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외래에 들어서면 왼편에 ‘모두의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별 이분법적으로 구분된 화장실이 곤란한 다양한 환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LGBTQ+ 환자들이 편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실에는 성소수자 관련 도서, 홍보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EMR(전자의무기록)에는 대신 환자가 희망하는 이름을 기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진료실 안팎으로 환자들이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진정으로 ‘모두를 환영’하고자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의학은 일반적으로 질병에 대한 표준 치료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참관을 통해 본 성소수자 의료는 개인의 상황과 요구에 대한 고려가 특히 강조되는 분야임을 느꼈습니다. 환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환자 개개인이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LGBTQ+센터에서는 진료 전 문진표 작성, 장시간에 걸친 상담, 홈페이지 등의 온라인 채널에 게시하는 정보를 통해 환자들이 수술, 치료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분투하고 계셨습니다.

10대부터 60대까지, 2주라는 짧은 실습 기간에도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보고,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식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교수님께서 상담을 통해 보여주신 수많은 환자들 한명 한명에게 인간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자세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트랜지션이라는 관문을 넘을 수 있도록 수술 순서를 포함한 향후의 인생 계획에 대해 상담하시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어떤 환자분의 살아온 이야기에 교수님께서도 눈물을 금치 못하셨던 상담이 있습니다. 혐오가 득세하고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 의료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료인으로서 그곳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LGBTQ+센터의 진료는 환자의 상태와 필요에 따라 다학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개별적 요구에 맞추어 강동성심병원 안의 다양한 진료과는 물론, 외부의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체∙기관과 협력하여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몸에 대한 생각은 천차만별인 만큼, 그 고민을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의사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수술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MTF환자의 복막을 활용한 질성형술(Vaginoplasty with peritoneum)은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비뇨기과와 일반외과 교수님들도 참여하는 큰 규모의 수술입니다. 또한, 환자의 요구에 따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진료과가 진료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 복잡한 수술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행 보험 체계에서는 성형외과에서 시행되는 미용 수술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이 수술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또 위험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Da Vinci 로봇을 통해 복강으로 진입한 후에는, 앞으로는 방광, 뒤로는 직장이 위치하는 매우 좁고 아슬아슬한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데, 이 수술이 왜 복강경이 아닌 일부 로봇으로 진행되어야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것인지를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수술 과정 한 단계 한 단계에서 의학의 발전과 인체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경 피부(Penile skin)를 벗겨낸 후, 등쪽 음경 신경혈관 다발(dorsal penile neurovascular bundle)을 굉장히 섬세하게 박리하지 않으면 성감을 담당하는 신경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귀두 일부를 클리토리스로 만들고, 요도 끝부분을 펼쳐서 클리토리스-요도 입구가 점막(mucosa)으로 덮일 수 있도록 하는 등,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최대한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술마다, 각 단계마다 쌓아 온 연구의 성과와 필요한 정성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번 참관을 통해, 성별 불일치감을 해소하고 원하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지, 당사자가 겪어왔고 앞으로도 헤쳐 나갈 ‘Journey’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후기’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밖에는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현 상황이 그 여정을 더 곤란하게 함을 알고, 앞으로 당사자이자 의사로서 연대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배움의 시간을 마련해주신 김결희 교수님,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환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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